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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루나파크: 훌쩍 런던에서 살기

루나파크로 알려졌던 홍인혜씨의 에세이가 나왔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회사를 그만 두고 영국에 있었을 때 얘기를 에세이로 쓴 것 같다.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3주간 유럽에 여행 갔다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공감이 갔던 부분을 기록해본다.

갖고 있을 땐 모른다(p178)

십 대 혹은 이십대, 청춘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에게 누구나 이렇게 이야기 한다. 네 나이가 부럽다, 나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 그 시절을 맘껏 누려라...... 하지만 막상 당사자는 고개를 갸웃한다. 대체 내가 가진 것의 가치가 얼만큼인지, 대체 어떻게 누려야 하는 건지 가늠이 안 되는 것이다.
(중략) 여행도 이와 비슷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장기여행, 뭘 해도 신기하고 의미 깊던 여행 초기를 지나 그야말로 생활자의 길에 들어서니 서서히 권태가 찾아왔다. (중략) 하지만 한국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그렇게 여유있게 산다니 참 좋겠다고! 런던에 있는 네가 못 견디게 부럽다고! 너의 권태마저 질투난다고!
(중략) 역시 갖고 있으면 귀한 줄 모른다. 후에 돌아보고 " 아, 그때 정말 제대로 즐겼어야 하는데" 하고 회한에나 사로잡히는 게 인간이다.

안달병 호전(p188)
나는 늘 문제가 발생하면 그에 대해 고뇌하고 또 고뇌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나 그저 얌전히 결과를 기다려야 할 사항마저도 전부 끌어안고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때로는 걱정이 내게 껌처럼 엉겨붙었고, 때로는 내가 걱정에 아교처럼 달라붙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 지쳐 나자빠질 정도가 되어야 벗어날 수 있었다. 아니, 벗어났다기보다 잠깐 쉴 수가 있었다.
(중략) 모두들 이런 내게 "잊어버려" "그냥 넘어가"하고 충고했지만, 난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깨알만 한 문제가 나를 계속 괴롭혔다. 완벽하지 못한 상태에서 행복할 수가 없었다.
(중략) '모든 것을 날씨처럼 생각하기'는 큰 효험이 있어서 여행 기간 내내 큰 힘이 되어주었다. 심란한 일이 생겨도 그저 어쩌다 맞이한 흐린 날인 거고, 문제가 발생해도 그저 소나기일 뿐이었다. 숱한 문제가 생겨도 예전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그저 적당히 떨어져서 보는 여유를 얻었다. 문젯거리를 늘 보물처럼 끌어안고 소일 삼아 걱정하던 내가 그 모든 트러블을 슬며시 내려놓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언제 다시 도질지 모르는 '안달병'이지만, 이런 회복 가능성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회사를 그만 두고 여행을 갔을 때, 그 때도 겨울이었다. 난 회사까지 그만 두고 가는 여행인 만큼 같은 크기의 행운도 기대했었나보다. 날씨가 매일 흐리고 비가 오고 으슬으슬 춥고 그런 날이 지속되고 집에 돌아갈 날은 점점 다가오고.. 나는 정말 예민해지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사소한 것들에 짜증을 내게 됐다. 하지만 그 때 여행을 오래 한 사람이 나를 도와주었다. '오늘 비가 오지 않았다면' 이 곳에 올 수 없었을 거고, 이 사람들도 못 만났을 거라며-

여행자의 작별(p231)
외국여행 중에 만난 국적이 다른 이들과 얼마간 가까이 지내다 헤어지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헤어짐은 사실상 '남은 평생 다시는 못 볼' 헤어짐이기 때문에 마음이 짠하다. 그래서 항상 뜨겁게 포옹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깨알같이 메일 주소를 교환한다. 아쉬움의 표현이니 가식적이라거나 형식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할 거다. 결국 이 사람과의 인연은 여기까지구나. 과연 우리가 서로 연락할 일이 또 있을까?

너는나(p267)
청소년기의 나를 돌아보면 온통 세상에 싫어하는 것투성이였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었다. 돌아보면 단지 까탈부리는 불평쟁이에 불과했지만, 당시의 나는 뭔가를 싫어하면서 일종의 우월감을 느꼈다. 내가 어떤 것에 대해 '싫다'고 말하고 그를 비판함으로써 그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략)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정말이지 그 혐오가 가당찮다. 내 취향이 아니면 그저 무관심하면 그만인 것을, 일일히 주의를 기울이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험담까지 했다니 그야말로 유치한 행태였다. 단지 토를 달기 위해 관심을 두고 그에 몰두하다니 모순적인 '싫음'이었다. 뭔가를 싫어하며 마치 자신이 미욱한 대중과는 취향의 수준이 전혀 다른 고상한 사람인 양 착각했다니 얼마나 우스운가.
(중략)그처럼 모든 것을 싫어하는 마음, 나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후략)

작가가 카피라이터라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냥 우리 주위의 사람의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사용하는 단어가 구체적이고 한글표현이 많아 좋았고 책 보는 맛이 났다. 그런데 구체적인 일화도 많이 쓰고 고민의 흔적도 많이 보여주었는데 이상하게도 솔직하다는 느낌은 많이 받지 못했다. 그래도 소장할만한 책인 것 같다. 회사 그만두고 싶을 때 보면 좋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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